세네카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삶의 크기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본성을 거스른 채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삶은 결국 마음을 지치게 하고, 삶의 주도권마저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오늘날 우리가 집을 선택하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에게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물으면 의외로 대답은 비슷하다. 작은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고, 햇빛이 잘 들었으면 좋겠고, 아이가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거실의 크기보다 가족이 함께 머무는 장소를 이야기하고, 집의 가격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나 조용한 동네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집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는 자신의 취향보다 안전한 선택을 먼저 생각한다. 앞으로 가격이 오를 것인지, 팔고 싶을 때 쉽게 팔 수 있는지, 학군은 어떤지, 다른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인지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의 끝에는 대부분 공동주택, 그중에서도 아파트가 남는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아파트를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집은 오랫동안 사는 곳인 동시에 자산이었다. 한 개인에게 집은 너무 큰 재산이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만으로 선택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 단독주택을 선택한다는 것은 건축과 유지관리의 부담뿐 아니라, 훗날 제대로 가격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까지 떠안는 일이 된다.
반면 아파트에는 이미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이 있다. 면적이 표준화되어 있고, 가격을 비교하기 쉽고, 거래 사례가 많으며, 다른 사람에게 그 가치를 설명하기도 쉽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살고 싶은 집보다 남들도 사고 싶어 하는 집을 선택하게 되었다.
여기에 비교의 문화가 더해진다.
어느 지역에 사는지, 몇 평에 사는지, 어느 브랜드의 아파트인지가 그 사람의 경제적 위치를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면서 집은 개인의 삶을 담는 공간이기보다 사회적 위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집을 선택하면서도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가 손해를 볼까 두렵고, 어렵게 모은 자산의 가치가 떨어질까 불안하다. 그래서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했고, 가장 쉽게 가격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가장 쉽게 다시 팔 수 있는 집으로 모여든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과정에서 집은 점점 안전한 자산이 되어가지만, 개인의 삶은 점점 비슷해진다는 사실이다.
같은 평면, 비슷한 거실, 비슷한 방의 크기, 비슷한 발코니와 주방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가족이 존재한다. 사람마다 가족의 모습도, 생활방식도, 좋아하는 공간도 다른데 그 삶을 담는 그릇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세네카의 질문을 주거에 가져와 본다면 이렇게 바꿔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집이 정말 나에게 맞는 집인가.
아니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집에서 살고 있는가.”
물론 공동주택에 사는 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뜻은 아니다. 공동주택은 편리하고 효율적이며 도시의 높은 밀도를 수용하는 매우 합리적인 주거 방식이다. 문제는 그것이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사실상 실패해서는 안 되는 사회에서 가장 안전한 선택지가 되어버렸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단독주택을 꿈꾸면서도 결국 아파트로 돌아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실패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선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네카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크기를 안다는 것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일이다. 더 큰 집, 더 비싼 집, 더 유명한 지역을 갖는 것보다 내가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지를 먼저 아는 것이다.
아침에 햇빛이 들어오는 작은 식탁이 중요한 사람도 있고, 아이와 뛰어놀 작은 마당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혼자 책을 읽을 조용한 방이 중요한 사람도 있고, 가족이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거실이 중요한 사람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좋은 집의 기준은 의외로 단순해진다.
좋은 집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집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가장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이다.
어쩌면 우리가 공동주택만을 살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땅이 부족해서도, 단독주택이 불편해서도 아닐지 모른다.
남들과 다른 삶을 선택했을 때 발생할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네카의 말은 2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집을 향해서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남들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