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에서 거주로: 집의 본질을 되찾다

2024.08.14

우리는 인생의 상당 부분을 집에서 보낸다. 단순히 하루에 8시간씩 잠만 잔다고 해도, 80년 인생 동안 약 26년을 집에서 보내게 된다. 여기에 일상적인 생활의 시간까지 더해 보면, 결국 우리는 무려 40년 정도를 집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셈이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집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집은 단순히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장소 이상의, 우리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소중한 공간이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공간인 '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집의 개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주거'라는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거주'라는 개념이다. '주거'는 흔히 우리가 생활을 영위하는 물리적인 장소, 즉 시설이나 위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주거 단지, 주거 지역과 같은 표현에서 '주거'는 집이 위치한 공간의 물리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을 나타낸다. 반면에 '거주'는 단순히 그 공간에 머무르는 것을 넘어, 그곳에서 실제로 삶을 영위하며 인간다운 생활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거주는 집이 가지는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우리의 생활 방식과 상호작용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

 

주거와 관련된 용어들에는 주거시설, 주거타입, 주거형식 등이 있으며, 이러한 단어들은 대체로 집이라는 공간을 물리적이고 편리한 장소로 연상하게 만든다. 이와 달리 '거주'라는 개념은 물리적인 편리함을 넘어, 인간의 본질적인 요구를 충족시키고 정서적인 안락함을 제공하는 집을 의미한다. 즉, 거주는 단순히 잘 정돈된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 속에서 개개인의 생활 방식이 녹아들고 의미를 부여받는 과정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주로 편리함에 초점을 맞춘 주거 공간을 강조하게 되면서, 집이라는 공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집은 그저 편리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편안함을 제공하고,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경험을 안겨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집의 본질적 가치는 바로 그 경험적 가치에 있다. 이러한 경험적 가치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리적 구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집의 경험적 가치는 그 공간을 채우는 분위기, 그곳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감성, 그리고 그 속에서 쌓여가는 추억과 함께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형성되는 집의 경험적 가치는 우리에게 편안함을 안겨주고, 삶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따라서 진정한 집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의 생활 방식과 필요에 맞게 설계되고 꾸며져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집은 단순한 거주의 공간을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으며, 거기서 비로소 진정한 경험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공급자 중심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개개인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반영한 집보다는 이미 정해진 주거 타입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것에 맞춰 살아가는 데에 길들여져 왔다. 심리학자 폴 키드웰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사랑하고 싶어 하지만, 그 집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집이 단순히 물리적인 형태만이 강조된 채, 거주자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편안함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집은 금전적 교환 가치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집은 단순히 자산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편안함과 경험적 가치를 제공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집은 우리가 쉴 수 있는 곳, 스스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곳,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추억을 쌓아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러한 집의 본질을 놓치지 않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집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분이며,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중요한 공간이다. 그리고 그 집이 진정한 의미에서 나를 위한 공간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거주'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