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고 있는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에서 관료제는 "책상에 의한 통치"로 정의된다. 이는 세상을 서랍으로 나누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넘어서 새로운 인위적 질서를 도입하려는 관료제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현실에 맞지 않는 상호 주관적 현실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관료제의 구조적 특징과 한계는 건축 설계와 공간 사용에서도 흥미로운 비유로 이어진다.
관료제는 복잡한 현실을 관리 가능한 체계로 단순화하려고 한다. 건축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공간을 용도에 따라 분할하고 각 공간의 역할을 정해 설계한다. 예를 들어 주거 공간에서는 침실, 거실, 주방, 욕실 등으로 기능을 명확히 구분하고 각 역할에 맞는 크기와 배치를 결정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용자들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규격화된 접근은 개별 사용자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모든 아파트의 설계가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질 경우, 다양한 가족 구조나 생활 방식이 반영되지 않아 개인의 필요를 억압할 수 있다. 이는 하라리가 지적한 "상호 주관적 현실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문제와 유사하다.
관료제는 복잡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세분화된 서랍 체계를 도입한다. 이는 건축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로 모듈러 디자인이 있다. 모듈러 디자인은 표준화된 부품을 사용해 건축물을 빠르게 조립할 수 있는 방법으로, 건축 공정을 단순화하고 비용을 절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효율성은 창의적 설계와 사용자 맞춤형 디자인을 제한할 수 있는 한계를 가진다. 이는 관료제가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놓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라리는 관료제가 인위적 질서를 도입하면서 현실의 복잡성과 불완전성을 간과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건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공공 건축물, 특히 학교나 관공서는 철저히 기능별로 공간을 분리하고 표준화된 계획을 적용한다. 이러한 접근은 효율성과 관리 용이성을 강조하지만, 사용자들의 실제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비효율적인 공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공시설이 특정 사용자 집단에게 불편함을 초래할 때, 이는 잘 맞지 않는 현실에 억지로 끼워 맞춘 결과라 할 수 있다.
관료제적 접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건축에서는 사용자 중심 설계를 도입한다. 이는 관료제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공간이 현실과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설계 초기 단계에서 실제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하거나 다목적 공간을 계획해 다양한 사용 방식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하는 방법이 있다. 이는 관료제의 규격화된 틀을 넘어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공간을 만드는 접근법이다.
관료제와 건축의 공통된 과제는 규격화와 유연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표준화된 설계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장점이 있지만,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사용자 경험을 제한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 두 요소를 조화롭게 결합하여 사용자에게 적합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관료제의 원칙이 설계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사용자 중심의 유연한 접근은 실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유발 하라리가 관료제에 대해 설명한 내용은 건축 설계와 공간 구성의 맥락에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관료제적 접근이 제공하는 효율성과 체계화는 건축에서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사용자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억누를 위험이 있다. 건축은 이러한 관료제적 원칙을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인간 중심 설계를 통해 사용자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창조해야 한다. 이를 통해 관료제의 경직성과 유연한 창의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춘 건축적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