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설계라는 영역에서 도면을 작성하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적 작업을 넘어 사고의 집약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설계사무실에서는 종종 이러한 사고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이유보다는 도제식의 방법을 통한 지식의 습득이 중심이 된다. 이는 설계자들이 왜 특정한 방식을 선택하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 선배나 상사로부터 전달된 디테일과 방식을 기계적으로 복제하는 관행을 낳는다. 도면 작성은 단순히 선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 설계 의도를 반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창조적 사고의 결과물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화는 그 본질을 퇴색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설계사무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서도 인문학적 사고만을 강조하며 실제 설계의 현실적 맥락을 교육 과정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인문학적 사고와 비판적 접근은 설계의 기본 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지만, 이를 실제 설계 과정과 연결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은 실무에서 마주하게 될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학교는 실무와 거리가 먼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교육을 제공하며, 설계사무실은 이유를 묻지 않는 복제식 교육을 강요하는 이 이분법적 구조가 건축 교육의 주요 문제를 형성하고 있다.
전우용 역사학자의 "무지와 무식" 개념은 이러한 상황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관점을 제공한다. 무지는 특정 주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설계사무실에서 이유를 묻지 않고 작업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반면 무식은 일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부족하거나 부정확한 상태를 나타낸다. 이는 학교에서의 추상적인 교육이 설계의 현실적 맥락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결국 설계사무실과 학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무지와 무식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설계사무실과 학교 모두에서 지식의 전달 방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설계사무실에서는 도면 작성의 이유와 논리를 강조하며, 도제식 교육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인문학적 사고를 실제 설계의 맥락과 연결시키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교육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질 때, 설계자는 단순히 도면을 작성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사고의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