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선과 명암으로 이루어진 이 스케치는 전차 한 대가 조용한 거리 위를 달리는 순간을 담고 있다. 도시의 혼잡함과는 멀어진 듯한 고요한 풍경 속에서, 전차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오는 듯, 느릿하고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주변은 소박한 주택과 가로수, 전신주와 가로등이 이루는 일상적인 장면들로 채워져 있지만, 그 일상성은 오히려 묘한 정서를 자아낸다.
전차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처럼 보인다. 한때 도시의 대중교통 중심이었으나 이제는 많은 곳에서 사라진 전차는, 이 장면 속에서는 여전히 길 위에 존재한다.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전차의 안과 밖에는 분명 수많은 이야기가 스며 있을 것이다. 출근길의 단잠에서 깬 학생, 손에 꽃다발을 든 노인,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이방인. 그들은 이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차의 창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상상이 스며든다.
스케치 위로 그어진 하늘의 선들은 마치 이 풍경을 한 편의 기억으로 감싸는 듯하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노면 위, 정직하게 이어진 전깃줄 아래에서, 전차는 묵묵히 자신이 가야 할 선로를 따라간다. 이 풍경은 다분히 정지된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아주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이 스케치는 단순한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도시의 흐릿한 과거와 여전히 이어지는 삶의 조각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 한 장면 속에서 멈춰 선 시간과 그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