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처마를 다시 그리다

2026.07.21

딸과 함께 공연을 보기 위해 연세대학교를 찾았다.
목적지는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이었다. 공연을 보러 가는 길, 콘서트홀 뒤편에 자리한 루스채플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것은 넓고 독특하게 펼쳐진 처마였다.

지붕은 단순히 건물 위를 덮고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가운데가 깊게 접히고 양쪽으로 힘 있게 뻗어나가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날개를 펼친 것처럼 느껴졌다. 전통 건축의 처마를 닮은 듯하면서도 훨씬 대담하고 현대적이었다. 무겁고 단단한 건물 위에서 지붕만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가볍고 역동적으로 보였다.

그 자리에서 오래 머물며 스케치를 하지는 못했다. 딸과 함께 공연을 보러 온 시간이었고, 곧 공연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대신 마음을 사로잡은 건물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언젠가 다시 천천히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처마의 선과 건물의 전체 모습을 몇 장의 사진 속에 남겼다.

시간이 지나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사진 속 루스채플은 그날의 기억을 그대로 불러왔다. 공연을 기다리던 순간의 공기, 딸과 함께 걷던 캠퍼스의 분위기,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난 독특한 처마의 인상이 다시 살아났다. 나는 그 기억을 조금 더 오래 붙잡아 두고 싶어 스케치북을 펼쳤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스케치는 현장에서 그리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현장에서는 눈앞의 장면을 따라가게 되지만, 시간이 지난 뒤 그리는 그림에는 기억과 감정이 함께 들어간다. 사진 속 모든 것을 정확하게 옮기기보다 그날 나의 시선을 가장 오래 붙잡았던 처마를 중심으로 선을 그었다.

펜을 움직일수록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나타났다. 지붕 아래 깊게 드리워진 그늘, 처마를 받치는 기둥과 벽, 건물 앞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난간, 주변의 나무와 자동차까지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던 순간에는 강렬한 지붕만 보였지만, 스케치를 하는 동안 건물이 주변 풍경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넓게 돌출된 처마는 단순한 장식처럼 보이지 않았다. 햇빛과 비를 막아주는 기능을 넘어 사람을 품고, 건물 안으로 이끄는 커다란 몸짓처럼 느껴졌다. 밝은 외부와 어두운 내부 사이에 깊은 경계를 만들면서 채플이라는 공간에 차분하고 장중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건축을 기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사진은 그 순간의 모습을 정확하게 남겨 주지만, 스케치는 그 장면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천천히 되짚으며 무엇이 내 마음을 움직였는지 다시 확인하게 한다.

그날의 목적은 딸과 함께 공연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공연뿐 아니라 백주년기념관 뒤편에서 우연히 마주친 루스채플의 처마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사진 속 건물을 다시 그리고, 그때의 감정을 글로 적으면서 깨닫게 된다. 스케치는 단순히 건물의 형태를 옮기는 일이 아니다. 한순간 마음에 들어왔던 풍경을 다시 불러내고, 지나간 시간 속에 머물렀던 나의 시선을 기록하는 일이다.

 

이번 그림은 루스채플을 정확히 묘사하기 위한 기록이라기보다, 딸과 함께했던 어느 날의 기억을 되짚기 위한 스케치다. 그리고 독특한 처마에 잠시 마음을 빼앗겼던 한 건축사의 작은 고백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