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 오래된 담장 앞에 붉은 문 하나가 서 있었다.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은 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너머의 풍경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닫힌 문은 그 안에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담장 위로는 오래된 나무들이 가지를 뻗고 있었다. 이미 잎을 내려놓은 가지와 아직 노란빛을 간직한 잎들이 한 화면 안에 섞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붉은 단풍이 마지막 불꽃처럼 타오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짙은 소나무가 계절과 관계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과 남아 있는 것이 서로 다투지 않고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건축도 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문과 담장은 단순히 공간을 나누는 경계가 아니다.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을 머금은 채, 오늘까지 자리를 지키는 존재다. 누군가는 이 문을 열고 배움을 향해 걸어갔을 것이고, 누군가는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이곳을 찾아 젊은 날의 자신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붉은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안에서는 수많은 문이 열렸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 속에서 우리는 새것을 만들고 낡은 것을 지우는 일에 익숙하다. 하지만 오래된 풍경 앞에 서면 비로소 알게 된다. 시간이 쌓인다는 것은 낡아가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가 겹겹이 깊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붉은 문을 중심에 두고 선을 긋고, 담장의 돌 하나하나를 천천히 그려 나갔다. 나뭇잎은 정확히 묘사하기보다 물감으로 가볍게 찍어 표현했다. 기억 속의 가을은 언제나 실제보다 조금 더 붉고, 조금 더 노랗기 때문이다. 그림은 풍경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그날 내가 느꼈던 시간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었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다.
그러나 문 앞에 멈춰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이미 하나의 길이 열린다. 그것은 담장 너머로 들어가는 길이 아니라,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길이다.
가을의 붉은 문 앞에서 나는 오래된 건축이 사람에게 건네는 말을 들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오래 머문 것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가 있다고.
그리고 닫힌 문 앞에서도 마음은 얼마든지 새로운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