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을 향한 오래된 건축의 그림자

2024.09.13

전봇대들이 낮게 엉킨 전선을 타고,
강원도의 초입은 한숨처럼 낮은 하늘에 걸려 있다.
언덕 너머 산자락이 이어진 곳엔,
오래된 기와와 새로 지은 집들이 함께 눕는다.

그러나 그 사이, 눈에 띄는 건축들이 있다.
사람이 떠난 지 오래된,
아무런 숨결도 느껴지지 않는 건물들.
벽은 색을 잃어가고, 창문은 먼지로 흐려진다.
문 앞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언제부턴가 누구도 그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죽어가는 건축,
그것은 시간이 남긴 상처이자,
기억의 파편들이 흩어진 자리다.

바람은 느리게, 그러나 끝없이 흘러
마치 기다림을 아는 것처럼
어디론가 서둘러 가지 않는다.
그 죽어가는 건축들은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내려놓으며,
과거의 시간과 이야기를 고요히 떠나보낸다.
마치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손길처럼 따스하다가도
낯선 이방인처럼 차갑다.

길가에 주차된 차들의 반짝임,
창문 너머로 보이는 집집마다의 작은 이야기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번져나간다.
홍천으로 가는 이 길 위에서
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을 담는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사람들은 각자의 하루를 이어가지만
언제나 변하지 않는 그리움처럼
이곳의 길은 나를 부른다.

날렵하게 휘어지는 언덕을 넘으면,
멀리 산봉우리 위에 내려앉는 구름들이
내 마음의 집을 닮았다.
그곳엔 여전히 내가 돌아갈 자리가 남아 있다.
죽어가는 건축의 침묵을 지나,
강원도 홍천으로 가는 길은,
어쩌면 내게 돌아가는 길일지도 모른다.